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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 공납의 폐단을 개혁한 김육의 위대한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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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최고의 경제 개혁, 대동법! 특산물 납부의 폐단(방납)을 끊어내고 토지 기준으로 세금을 통일한 김육의 집념과 대동법이 가져온 조선 후기의 변화를 분석합니다. 📋 목차 공납의 폐단: 백성을 죽음으로 내몬 방납 대동법의 핵심: 특산물 대신 쌀로 낸다 개혁가 김육: "백성을 살리는 것이 먼저다" 체험! 조선시대 세금 계산기 (대동법 적용) "가난한 백성은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는데 세금은 산더미처럼 쌓이고, 부유한 지주는 넓은 땅을 가지고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조선 중기, 백성들의 삶은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공납(특산물 납부)' 이라는 불합리한 제도가 있었죠. 이때 혜성처럼 등장하여 "특산물 대신 쌀로 세금을 내게 하라!" 고 외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조선 최고의 실용주의 정치가 김육 입니다. 오늘은 백성을 구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김육의 노력과, 조선 경제의 판도를 뒤바꾼 대동법 의 위대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공납의 폐단: 백성을 죽음으로 내몬 방납 🤔 대동법이 왜 혁명적인지 이해하려면, 그 전의 상황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당시 세금 중 하나인 공납(貢納) 은 각 지역의 특산물을 바치는 제도였습니다. 문제는 '방납(防納)' 이라는 폐단이었습니다. 상인이나 관리들이 백성이 직접 특산물을 내지 못하게 막고(防), 자신들이 대신 낸 뒤 백성에게 10배, 심지어 100배의 가격 을 덮어씌워 받아냈습니다. 게다가 그 지역에서 나지 않는 물건을 바치라는 경우도 허다했죠. (예: 산골 마을에 물고기를 바치라 함) ...

조선의 경제를 지배한 두 거인: 시전상인 vs 보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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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날이다! 짐을 싸라!" 조선의 경제를 움직였던 두 개의 거대한 축, 한양을 지키는 '시전상인'과 전국을 누비는 '보부상'. 그들의 치열했던 상권 다툼과 조선 장터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 목차 한양의 큰손, 시전상인과 육의전 길 위의 승부사, 보부상의 세계 앉은 장사 vs 걷는 장사 비교 분석 조선 상인 적성 테스트: 나는 누구일까? 사극 드라마를 보면 왁자지껄한 장터에서 국밥을 먹는 보부상의 모습이나, 비단 옷을 입고 거만한 표정으로 가게를 지키는 한양 상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의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을 넘어, 정보가 모이고 문화가 흐르는 핫플레이스였죠. 😮 하지만 그 안에는 엄격한 위계질서와 치열한 이권 다툼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국가의 허락을 받은 엘리트 상인 '시전상인' 과 봇짐 하나 메고 전국을 연결했던 '보부상' . 조선 경제의 양대 산맥이었던 이들의 삶과 역사를 통해 500년 전 조선의 활기찬 경제 현장으로 떠나보겠습니다. 🎒🪙   한양의 큰손, 시전상인과 육의전 🤔 지금의 서울 종로 거리는 조선 시대 경제의 심장부였습니다. 이곳에는 국가로부터 정식으로 허가를 받고 가게(점포)를 차려 장사하는 '시전(市廛)상인' 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왕실과 관청에 필요한 물품을 납품하는 대신, 특정 물품을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비중이 컸던 6가지 품목(비단, 무명, 명주, 종이, 모시, 생선)을 다루는 상점을 '육의전(六矣廛)' 이라 불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