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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제를 지배한 두 거인: 시전상인 vs 보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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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날이다! 짐을 싸라!" 조선의 경제를 움직였던 두 개의 거대한 축, 한양을 지키는 '시전상인'과 전국을 누비는 '보부상'. 그들의 치열했던 상권 다툼과 조선 장터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 목차 한양의 큰손, 시전상인과 육의전 길 위의 승부사, 보부상의 세계 앉은 장사 vs 걷는 장사 비교 분석 조선 상인 적성 테스트: 나는 누구일까? 사극 드라마를 보면 왁자지껄한 장터에서 국밥을 먹는 보부상의 모습이나, 비단 옷을 입고 거만한 표정으로 가게를 지키는 한양 상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의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을 넘어, 정보가 모이고 문화가 흐르는 핫플레이스였죠. 😮 하지만 그 안에는 엄격한 위계질서와 치열한 이권 다툼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국가의 허락을 받은 엘리트 상인 '시전상인' 과 봇짐 하나 메고 전국을 연결했던 '보부상' . 조선 경제의 양대 산맥이었던 이들의 삶과 역사를 통해 500년 전 조선의 활기찬 경제 현장으로 떠나보겠습니다. 🎒🪙   한양의 큰손, 시전상인과 육의전 🤔 지금의 서울 종로 거리는 조선 시대 경제의 심장부였습니다. 이곳에는 국가로부터 정식으로 허가를 받고 가게(점포)를 차려 장사하는 '시전(市廛)상인' 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왕실과 관청에 필요한 물품을 납품하는 대신, 특정 물품을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비중이 컸던 6가지 품목(비단, 무명, 명주, 종이, 모시, 생선)을 다루는 상점을 '육의전(六矣廛)' 이라 불렀습니다. ...

정조가 수원화성을 지은 진짜 이유 : 아버지 사도세자와 개혁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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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조선 최고의 개혁 군주 정조, 그가 아버지의 무덤을 옮기고 '수원화성'이라는 거대한 신도시를 건설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의 개혁 정치와 원대한 꿈의 실체를 파헤쳐 봅니다. 📋 목차 비극에서 피어난 개혁의 불꽃 정조의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 규장각과 장용영 백성을 위한 경제 개혁, 신해통공 개혁의 결정체, '수원화성'을 건설하다 이루지 못한 꿈, 그리고 남겨진 유산 조선 왕조 500년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왕을 꼽으라면 많은 분이 '정조(正祖)'를 떠올릴 것입니다. 뒤주 속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사도세자)를 둔 왕세손.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선포하며 조선의 근본적인 개혁을 꿈꿨습니다. 그리고 그 개혁의 꿈과 비전이 집약된 상징물이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水原華城)'**입니다. 오늘은 정조가 왜 그토록 강력한 개혁을 추진했는지, 그리고 그 꿈이 수원화성 건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   비극에서 피어난 개혁의 불꽃 🔥 정조의 개혁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임오화변)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를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정조에게 '개혁'은 단순히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비정상적인 붕당 정치와 외척 세력을 청산 하는 '숙명'이었습니다. 그는 영조의 탕평책을 이어받아 '준론 탕평(峻論蕩平)'을 추진합니다. 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