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1884): 김옥균의 '3일 천하'는 왜 실패했나? (원인, 결과)
📋 목차
1882년 임오군란이 청나라의 도움으로 진압되면서, 조선에 대한 청의 내정 간섭은 극에 달했습니다. 고종과 명성황후를 위시한 민씨 정권은 청나라에 의지하며 소극적인 개혁을 추구하고 있었죠.
하지만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모델로 '완전한 근대화'를 꿈꾸던 젊은 엘리트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등 '급진개화파'입니다. 이들은 청나라의 간섭과 민씨 정권의 소극적인 태도로는 조선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 과감한 '쿠데타'를 계획하게 됩니다. 바로 '갑신정변'입니다. 😊
배경: 청나라의 간섭과 갈라선 개화파 🤔
임오군란(1882) 이후 조선의 개화 세력은 둘로 쪼개졌습니다. 이들의 차이점을 아는 것이 갑신정변을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 구분 | 온건개화파 (친청) | 급진개화파 (친일) |
|---|---|---|
| 주요 인물 | 김홍집, 김윤식 (민씨 정권) |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
| 개혁 모델 | 청나라의 '양무운동' (동도서기) | 일본의 '메이지 유신' (문명개화) |
| 개혁 방식 | 점진적, 기술 중심 (친청 사대) | 급진적, 사상/제도 중심 (탈청 자주) |
급진개화파는 자신들의 개혁안이 민씨 정권과 청나라에 의해 계속 가로막히자, 일본의 군사적 지원을 약속받고 무력으로 정권을 뒤엎을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D-Day: 우정총국 축하연의 총성 💥
1884년 12월 4일 (음력 10월 17일), 조선 최초의 우체국인 **'우정총국'의 개국 축하연**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민씨 정권의 고위 관료들과 외국 공사들이 모두 모였죠.
급진개화파에게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날이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축하연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밖에서 "불이야!" 하는 외침과 함께 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이 혼란을 틈타 개화파는 계획대로 민씨 정권의 핵심 인물들을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이들은 즉시 창덕궁으로 달려가 고종과 명성황후에게 "청나라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거짓 보고를 한 뒤, 왕과 왕비를 경우궁으로 옮기고 일본군 150여 명의 호위를 받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만의 새로운 정부를 선포합니다.
단 3일의 개혁, 14개조 정강 📜
새로운 정부를 수립한 급진개화파는 곧바로 자신들이 꿈꾸던 새로운 조선의 모습을 담은 **'14개조 정강'**을 발표합니다. 이는 조선 최초의 근대적 개혁안으로 평가받습니다.
📝 14개조 정강의 핵심 내용
- 제1조: 청나라에 잡혀간 흥선대원군을 곧 돌아오게 하며, 청에 대한 조공의 허례를 폐지한다. (탈청 자주)
- 제2조: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리를 세우고,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한다. (신분제 타파)
- 제4조: 모든 재정은 호조(戶曹)에서 통일하여 관리한다. (재정 일원화)
- 제13조: 대신과 참찬은 의정부에 모여 정령(政令)을 의결하고 반포한다. (내각 중심 정치 지향)
이 외에도 지조법(세금) 개혁, 혜상공국(보부상 특권) 폐지 등 경제/사회 전반의 급진적인 개혁안을 담았습니다.
실패: 청나라의 개입과 일본의 배신
하지만 이들의 세상은 단 3일 만에 끝이 납니다. 그래서 '3일 천하'라고 불리죠.
상황이 불리해진 민씨 세력이 한성에 주둔 중이던 **청나라 군대(약 1,500명)**에게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12월 6일, 청나라 군대가 궁궐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급진개화파는 자신들을 돕기로 약속했던 일본군(약 150명)에 의지했지만, 압도적인 수의 청군이 밀려오자 일본군은 약속을 어기고 철수해버렸습니다. (배신이죠 😥)
모든 것을 잃은 김옥균, 박영효 등은 일본으로 망명했고, 홍영식과 박영교 등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청군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이렇게 갑신정변은 3일 만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결과: 조선을 둘러싼 두 조약 (한성 & 톈진)
정변은 실패했지만, 그 뒷수습은 조선에게 더욱 가혹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조선의 운명을 가를 2개의 중요한 조약이 체결됩니다.
일본은 자신들이 정변을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사관이 불타고 자국민이 희생되었다며 오히려 조선을 압박했습니다. 결국 조선은 일본에 사과하고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게 됩니다.
조선에서 군사적으로 충돌했던 청과 일본이 맺은 조약입니다.
- ① 양국 군대는 조선에서 즉시 함께 철수한다.
- ② 앞으로 조선에 군대를 파병할 시, 서로에게 반드시 사전에 통보한다.
이 조약으로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독점적 지위가 무너지고, 일본이 청나라와 동등하게 조선에 군대를 파병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10년 뒤 **청일전쟁의 불씨**가 됩니다.
갑신정변(1884) 핵심 요약
톈진조약(청-일): 양국 공동 파병권 확보 (청일전쟁의 불씨)
자주 묻는 질문 ❓
• **임오군란(1882):** 구식 군인들이 '개화 정책에 반대'하며 일으킨 '아래로부터의' 보수적 반란입니다.
• **갑신정변(1884):** 급진개화파 엘리트들이 '더 빠른 개화'를 위해 일으킨 '위로부터의' 급진적 쿠데타입니다.
갑신정변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근대 국가를 세우려 했던' 최초의 정치 개혁 운동이라는 점에서 큰 역사적 의의를 가집니다. 그들의 꿈은 10년 뒤 갑오개혁으로 일부 이어지게 되죠.
더 궁금한 역사 이야기가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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