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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 꼬마 신랑과 평생 독수공방? 조선 혼인의 매운맛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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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낭만적인 조선의 혼례, 과연 현실도 그랬을까요? 노동력 확보를 위한 10대 '조혼'부터, 남편을 잃으면 평생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재가 금지'의 족쇄까지. 우리가 몰랐던 조선시대 혼인 제도의 서늘한 실체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를 바탕으로 낱낱이 파헤쳐 드립니다. 사극 드라마를 보다 보면 댕기 머리를 한 어린 신랑이 연상이나 다름없는 신부와 꼬마 부부로 등장하는 장면,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그저 '옛날엔 그랬구나' 하고 웃어넘기기엔 그 속에 담긴 현실이 꽤나 맵습니다. 낭만보다는 '생존'과 '가문의 영광'이 우선이었던 조선의 혼인 제도,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충격적인 그 내막을 들여다봅니다. 1. 10살 꼬마 신랑, '조혼'은 선택이 아닌 필수? "아니, 10살짜리가 무슨 결혼을 해요?"라고 물으신다면, 조선시대엔 "10살이면 다 컸지!"라고 답했을지도 모릅니다. 조선의 법전인 국사편찬위원회 자료를 보면 법적인 혼인 가능 연령은 남자 15세, 여자 14세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법적인 기준일 뿐,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식을 올리는 '조혼(早婚)'이 만연했습니다.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었습니다. 바로 '노동력'과 '가문의 대' 때문입니다. 농경 사회에서 사람 손 하나가 귀했던 시절, 며느리를 빨리 들여 집안일을 시키고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했습니다. 또한 전염병이나 기근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후손을 보아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이 효도의 완성이었죠. 2. 한번 과부는 영원한 과부? 잔혹한 '재가 금지' 조혼보다 더 가혹했던 것은 바로 '재가(再嫁) 금지' 풍습입니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여성의 재혼이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성종 때 경국대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 반포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