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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3년상, 진짜 3년 내내 울었을까? 소름 돋는 장례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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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효(孝)의 정점이라 불리는 3년상, 과연 우리가 아는 것처럼 꼬박 3년을 채웠을까요? 27개월의 비밀부터 움막살이의 고충까지, 교과서에는 없는 리얼한 역사 이야기를 지금 바로 확인해보세요. 현대 사회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직장을 3년간 휴직하고 무덤 옆에서 텐트를 치고 산다면 어떨까요? 아마 '효자'라는 소리보다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일 겁니다. 하지만 불과 100여 년 전, 조선에서는 이것이 인간의 도리이자 사회적 생존을 위한 필수 스펙이었습니다. 오늘은 단순히 '효도'라고 퉁치기에는 너무나 가혹하고, 한편으로는 정교했던 조선의 장례 문화, 그중에서도 '3년상'의 디테일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1. 3년상은 사실 3년이 아니다? (27개월의 비밀) 흔히 '3년상'이라고 하면 365일 곱하기 3, 즉 만 3년을 꼬박 채우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 기간은 만 24개월을 보내고 25개월째 접어들어 치르는 제사, 그리고 27개월째에 완전히 탈상 하는 구조였습니다. 햇수로는 3년에 걸쳐 있지만, 개월 수로는 약 27개월인 셈입니다. 이는 아이가 태어나서 부모의 품을 떠나 혼자 걷고 밥을 먹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대략 3년(햇수)이라는 점에 착안해,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그대로 되돌려준다는 유교적 철학이 깔려 있습니다. 자세한 절차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삼년상) 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소상(1주기), 대상(2주기)을 거쳐 담제(27개월)를 지내야 비로소 평상시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2. 여막살이: 극한의 생존 체험 가장 충격적인 것은 거주 형태입니다. 상주는 따뜻한 안방을 버리고 무덤 옆에 '여막(廬幕)'이라는 임시 거처를 짓고 살아야 했습니다. 식단 제한: 초기에는 미음만 먹다가 점차 밥을 먹지만, 고기와 술은 2년 넘게 금지되었습니다.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상주가 속출했던 이유입니다. 의복: 거친 삼베옷(최복)을 입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