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의 동학 농민 운동(1894): 반봉건 반외세를 외친 농민들의 함성
📋 목차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 이 노래 다들 들어보셨죠? 여기서 '녹두'가 바로 동학 농민 운동의 지도자인 '녹두장군' 전봉준을 뜻합니다. 1894년(고종 31년), 조선은 안으로는 탐관오리의 수탈, 밖으로는 외세의 침략이라는 최악의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이때 "더 이상은 못 참겠다!"며 일어선 이들이 바로 농민들이었습니다. 단순한 민란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꿨던 이들의 외침, 동학 농민 운동은 어떻게 시작되고 전개되었을까요? 😊
배경: 농민들은 왜 죽창을 들어야 했나? 🤔
농민들이 봉기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썩을 대로 썩은 정치 (삼정의 문란)
당시 조선의 세금 제도(삼정: 전정, 군정, 환곡)는 완전히 무너져 있었습니다. 특히 고부 군수 '조병갑'과 같은 탐관오리들은 멀쩡한 만석보 저수지를 새로 짓는다며 농민들에게 강제 노역과 물세를 이중으로 뜯어내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수탈을 저질렀습니다.
2. 외세의 경제적 침탈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항구가 열린 뒤, 일본 상인들이 조선의 쌀을 마구잡이로 사들여갔습니다. 이 때문에 조선 내의 쌀값은 폭등했고, 정작 쌀을 생산한 농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3. 새로운 사상, '동학'의 확산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내세운 동학은 신분 차별에 고통받던 농민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습니다. "우리도 존엄한 사람이다"라는 평등사상은 농민들을 하나로 뭉치는 이념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1차 봉기: 탐관오리를 몰아내다 (반봉건) ⚔️
1894년 1월, 결국 고부 군수 조병갑의 탐학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전봉준**을 중심으로 봉기했습니다. 이것이 '고부 농민 봉기'입니다.
정부가 사태를 수습하겠다며 파견한 안핵사 이용태가 오히려 농민들을 탄압하자, 분노는 더욱 커졌습니다. 전봉준은 손화중, 김개남 등과 함께 다시 일어나 무장에서 봉기, **'보국안민(輔國安民: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을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 황토현 / 황룡강 전투 승리: 동학 농민군은 조선의 관군(정부군)을 상대로 연이어 큰 승리를 거둡니다.
- 전주성 점령: 기세를 몰아 호남의 중심지인 전주성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다급해진 조선 정부는 최악의 선택을 합니다. 바로 이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군대 파병을 요청**한 것입니다.
청나라 군대가 들어오자, 외세의 개입을 원치 않았던 농민군과 정부는 급히 화해를 합니다. (전주 화약)
이때 농민들은 '폐정개혁안(썩은 정치를 개혁하는 안)'을 제시하고, 전라도 일대에 '집강소'라는 농민 자치 기구를 설치하여 스스로 개혁을 실천해 나갔습니다. 이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2차 봉기: 일본의 침략에 맞서다 (반외세) 🇯🇵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오자, 10년 전 '톈진 조약'을 빌미로 **일본 군대** 또한 조선에 상륙합니다. 이미 전주 화약으로 농민군이 해산했음에도, 일본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본은 1894년 7월,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민씨 정권을 무너뜨린 뒤, 조선 땅에서 '청일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조선의 주권이 완전히 유린당한 것이죠.
이에 농민군은 1차 봉기의 목적인 '반봉건'을 넘어, '일본군을 몰아내자'는 **'반외세(척왜)'**의 기치를 들고 다시 일어섭니다. 이것이 2차 봉기입니다.
전봉준이 이끈 남접과 손병희의 북접이 논산에서 연합하여 서울로 향했지만, 충청도 '우금치' 고개에서 일본군과 정부군 연합 부대를 만나게 됩니다.
죽창과 화승총을 든 농민군은 일본군의 신식 무기(기관총, 대포) 앞에 처참하게 무너집니다. 수만 명의 농민군이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우금치 전투의 패배로 동학 농민 운동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고, 전봉준은 1895년 체포되어 처형당합니다.
결과와 의의: 실패로 끝났지만... 📚
동학 농민 운동은 비록 군사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조선 역사에 거대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 갑오개혁(甲午改革)에 영향: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한 후 추진한 '갑오개혁'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동학 농민군이 '폐정개혁안'에서 요구했던 내용이 대거 포함되었습니다. (예: 신분제 폐지, 과부 재가 허용, 조세 개혁 등)
- 청일전쟁의 빌미: 동학 농민 운동은 청일전쟁이 조선 땅에서 발발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 항일 의병 운동의 뿌리: 비록 패배했지만, 외세에 맞서 싸웠던 동학 농민군의 저항 정신은 이후 '항일 의병 운동'과 '3.1 운동'으로 계승되었습니다.
동학 농민 운동(1894) 핵심 요약
자주 묻는 질문 ❓
동학 농민 운동은 낡은 봉건 체제와 외세의 침략에 맞서 백성 스스로가 역사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위대한 저항이었습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이들의 절박한 외침은 1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더 궁금한 역사 이야기가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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